전체 글 11

사상의 오명을 쓴 철학자들 : 마르크스와 니체

칼 마르크스와 니체는 아마 현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논란 많은 철학자이다. 비록 우리에게 철학자이자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창시자로 잘못 알려진 그들은, 현재 자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끔짝한 만행과 악용하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비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정치 철학자,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는 표면적으로는 정반대로 보인다.마르크스가 이성을 옹호한 반면, 니체는 열정을 옹호했다. 마르크스는 집단을 믿었지만, 니체는 개인을 옹호했다. 마르크스는 대중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해자였던 것에 반해 니체는 '무리'를 혐오했고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평등을 추구했고 니체는 위계를 추구했다.하지만 그들은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독일..

"마르크스는 탈성장을 원한적이 없다" : 탈성장,생태사회주의 비판

탈성장의 도래2010년대 중반 이후, 탈성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기사와 책이 급증했다.탈성장이란 '성장에 집착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좌익 환경주의자의 경제적 주장'으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자원고갈,환경오염과 같은 문제가 생겨나자 아예 성장을 반대해서 인류와 자연을 구하자는 뜻에서 시작되었다.짧게 말해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말이다.탈성장주의자들은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하며 여러 면에서 탈성장론자들은 단순한 경제 성장 이상을 공격하고 있다.The Future is Degrowth (2022)에서 탈성장주의자인 메튜 슈멜쳐가 탈성장을 언급했듯이'우리는 현대 성장 패러다임이 사회적, 물질적 과정으로서의 성장에 기반을 두고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적어도 식민..

"무한의 윤리" : 스피노자의 『윤리학』

『윤리학』은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는 일원론을 주장한 스피노자의 걸작으로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이전의 홉스나 데카르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철학적 합리주의의 방법인 에우클레이데스의 엄격한 연역적 방법을 따른다.즉 하나의 서론에서 두 개의 공리를 이끌어내도록 되어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 모든 부분은 관련된 모든 표현의 이해를 확정하는 정의와 더불어 시작한다. 공리들, 정리들 그리고 증명과 결합되어 있는 설명이 이후 뒤따라 나온다. 그 시대의 표준적 철학자인 데카르트와 달리, 스피노자는 더 이상 의심에 의거해 진리를 기초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플라톤이나 신플라톤주의, 쇠렌 키르케고르같이 완전성에 관심이 있었다.신, 자연 혹은 인간의 자유의 가능성 등 어디에 방향을 두고 있든 ..

칼 마르크스, 붉은 유령의 생애

마르크스의 초년의 삶은 1814년 빈 회의 이후 나타난 왕정복고의 시대였다. 나폴레옹의 지배에 저항한 독일의 해방전쟁은 불과 몇 년 전이였고. 오스트리아의 수상인 메테르니히의 주재 아래 유럽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군주제라는 혁명 이전의 체제로 재편되었다.1830년 파리에서의 7월 혁명 이후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힘과 1848년 2월혁명 이후 노동운동 및 결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중요해졌던 격동기였기에 이러한 체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으로 증폭되었다.언론인이자 정치가이고 또 철학자인,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가인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그 몇 년 전에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전향한 명망 있는 변호사의 아들로 트리어의 항소법정에서 태어났다.마르크스는 유대계였고 외조부는 네덜란드의 랍..

"공산주의는 진실로 무정부주의다" : 공산주의의 실체와 왜곡, 그리고 거짓

1.공산주의의 목적 엥겔스가 쓴 "공산주의의 원리"의 18단락에 나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목적:"모든 자본, 모든 생산, 모든 교환이 국민의 손에 집약되면 사유 재산은 저절로 사라지고 화폐는 불필요해질 것이며 생산이 확대되고 인간은 크게 변할 것이다. 남아 있는 오래된 경제적 습관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공산주의의 핵심은 평등임금이나 정부의 억압적인 통제가 아니라 파괴적인 계급 분열이 없는 노동자의 생산성으로 평등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의 평등한 분배 뒤에 숨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래 의도는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였다.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것을 생산할 것이고 더 많이 생산될수록 사회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문헌에 묘사된 고대 한민족의 특징

발해 사람 셋이 모이면 범 한마리를 당해낸다. 이 말은 후세에 각색된 말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발해 사람들이 강인하고 용감한 기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해 뿐만 아닌 다른 중국 측 문헌들을 살펴보면,부여에 대해서는 , , 등이 모두 "그 백성들이 강인하고 용감하다(其人强勇)"라고 적고 있다. 고대 한민족과 유사한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읍루에 대해서는 에서는 "사람들이 용감하고 힘센 경우가 많다(人多勇力)", 에서 "무리는 비록 적지만 용감하고 힘센 이가 많다(衆雖少而多勇力)"라고 적고 있다. 또 한 동옥저에 대해서는 , 에서 "강인하고 용감하다(强勇)"라고 적고 있고 마한에 대해서는 에서 "성질이 강인하고 용감하다(性强勇)", · 에서는 "그 사람들이 씩씩하고 용감하다(其人 壯勇)", 에서는..

카테고리 없음 2024.08.03

기억의 가장자리 : 고조선과는 다른 부여의 기원

일반적으로 한국사 교과서에는 우리역사가 고조선에서 부여로 이어지며,다시 고구려,백제,신라 등의 삼국시대와 남북국,후삼국,고려,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단일민족의 역사임을 강조하여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단일민족은 하나의 시조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으로 부여의 시조 역시 단군이여야 의미가 성립한다. 부여는 동명이라는 인물을 시조로 삼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부여는 고조선과 같은 뿌리의 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과연 한민족을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을까?이점에 대해선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부여와 고조선의 건국설화 차이 먼저 단군신화와 동명 신화를 비교해보자면 단군신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환웅이 내려와 웅녀와 혼인해 단군을 낳아 아..

카테고리 없음 2024.07.30

{아라가야사}-(3) 「야금기술과 철기」

아라가야의 역사에 관하여 3편(아라가야의 야금기술과 철기) {아라가야의 야금기술} 야금이란 광석에서 금속을 추출하고 정련해서 금속도구를 가공하는 기술을 통칭하는 것으로 제철-제강기술도 포함된다. 당시 야금기술은 널리 쓰였지만 가야지역은 특히 품질이 좋고 우수했으며 아라가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크게 철의 생산은 채광, 제련, 용해, 정련, 단련 등 5가지로 나눠진다. 채광은 철광석을 캐내는 작업으로 주변에 철산지가 있어야 가능한데, 아라가야는 현재 합천군 야로 철산지만이 유일하다.철산지 말고도 철을 가공하는 야철지는 군북면,여항면 지역에 있으며 물증은 없지만 함안 인근에도 철산지가 있는것으로 추측된다.제련은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공정이다. 제철로에 철을 넣고 숯으로 불을 지피는데, 철은 대체로 1..

아라가야사 2024.07.29

다라국 : 「독립국으로 날조된 대가야의 지방정권」

합천 다라국은 독립국이 아닌 대가야의 지방정권이다.(합천 지역을 독립국가로 보지 않는 이유)아라가야사를 서술함에 있어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다.바로 합천의 여러 고분군을 비롯한 합천의 지역은 현재 학계가 주장하기를 또다른 가야인 다라국이라는 것이다.그렇기에 합천의 유물들을 비롯한 내용들은 다라국의 유산으로 서술해야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그말이 꼭 틀린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다라국이 독립국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창녕계,아라가야계와 대다수인 대가야계통이 있지만 합천의 일부 유물중에 아라가야계로 보일 경우에 자료로서 서술했을 뿐이다. 논문자료에도 합천의 장신구와 부장품이 아라가야계로 소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다라국은 왜 독립국가가 아닌가?이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생..

카테고리 없음 2024.05.27

{아라가야사}-(2) 「건축과 공예」

아라가야의 역사에 관하여 2편 「건축과 공예」 {아라가야의 건축}가야의 건축은 현재 남아있는것이 거의 없다.그러나 크고작은 건축터와 왕궁터, 산등성이를 따라 지어진 산성, 집모양 토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다만 언제든 발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1.주거지아라가야인의 집은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집모양 토기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맞배지붕의 고상식으로 바닥에 기둥을 9개를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형태이다.우리나라 건축양식인 삼량가(도리 3개가 있는 지붕)처럼 대들보,도리,서까래 마감재의 부분이 정확하게 드러난다.한눈에 보면 전형적인 고상가옥처럼 보이지만 고유 건축양식과 상형토기로 나올만큼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아라가야인의 집이라고 단정짓기엔 이르다.특이하게 계단이 없는 것으로 ..

아라가야사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