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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탈성장을 꿈꾸지 않았다"

탈성장의 도래 2010년대 중반 이후, 탈성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기사와 책이 급증했다. 탈성장이란 '성장에 집착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환경주의자의 경제적 주장'으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자원고갈,환경오염과 같은 문제가 생겨나자 아예 성장을 반대해서 인류와 자연을 구하자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짧게 말해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말이다. 탈성장의 지지자들은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 면에서 탈성장론자들은 단순한 경제 성장 이상을 공격하고 있다. 탈성장주의자인 Matthias Schmelzer 가 The Future is Degrowth (2022)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현대 성장 패러다임이 사회적, 물질적 과정으로서의 성장에 기반을 두고 상호..

카테고리 없음 2024.09.17

"무한의 윤리" : 스피노자의 『윤리학』

『윤리학』은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는 일원론을 주장한 스피노자의 걸작으로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이전의 홉스나 데카르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철학적 합리주의의 방법, 즉 에우클레이데스의 엄격한 연역적 방법을 따른다. 즉 하나의 서론에서 두 개의 공리를 이끌어내도록 되어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 모든 부분은 관련된 모든 표현의 이해를 확정하는 정의와 더불어 시작한다. 공리들, 정리들 그리고 증명과 결합되어 있는 설명이 이를 뒤따라 나온다. 그 시대의 표준적 철학자인 데카르트와 달리, 스피노자는 더 이상 의심에 의거해 진리를 기초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플라톤이나 신플라톤주의처럼, 그리고 나중의 쇠렌 키르케고르처럼 완전성에 관심이 있다. 신, 자연 혹은 인간의 자유의 가능성 등 어..

카테고리 없음 2024.09.03

칼 마르크스, 붉은 유령의 생애

마르크스의 초년의 삶은 1814년 빈 회의 이후 나타난 왕정복고의 시대였다. 나폴레옹의 지배에 저항한 독일의 해방전쟁은 불과 몇 년 전이였고. 오스트리아의 수상인 메테르니히의 주재 아래 유럽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군주제라는 혁명 이전의 체제로 재편되었다. 1830년 파리에서의 7월 혁명 이후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힘과 1848년 2월혁명 이후 노동운동 및 결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중요해졌던 격동기였기에 이러한 체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으로 증폭되었다. 언론인이자 정치가이고 또 철학자인,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가인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그 몇 년 전에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전향한 명망 있는 변호사의 아들로 트리어의 항소법정에서 태어났다. 마르크스는 유대계였고 외조부는 네덜란드..

카테고리 없음 2024.09.02

붉은 신화의 그림자 : 공산주의의 진실과 오해

1.공산주의는 무엇인가 엥겔스가 쓴 "공산주의의 원리"의 18단락에 나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목적: "모든 자본, 모든 생산, 모든 교환이 국민의 손에 집약되면 사유 재산은 저절로 사라지고 화폐는 불필요해질 것이며 생산이 확대되고 인간은 크게 변할 것이다. 남아 있는 오래된 경제적 습관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평등임금이나 정부의 억압적인 통제가 아니라 파괴적인 계급 분열이 없는 노동자의 생산성으로 평등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의 평등한 분배 뒤에 숨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래 의도는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였다.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것을 생산할 것이고 더 많이 생산될수록 사회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카테고리 없음 2024.08.20

고대 한국인의 특징과 기품,그리고 민족성

최근에 파리 하계올림픽에서 국대선수들이 양궁,펜싱,사격 등 무기 3종목에서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과거 한국인들의 궁술,민족성 등을 다룬 고문헌들을 언급하며 한국인들의 유구한 특징을 조명되고 있다. 그렇기에 적게나마 한국인의 특징,기질 등을 언급한 고문헌의 기록에 따라 주제를 다뤄 볼 것이다. 발해 사람 셋이 모이면 범 한마리를 당해낸다. 이 말은 후세에 각색된 말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발해 사람들이 강인하고 용감한 기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해 뿐만 아닌 다른 중국 측 문헌들을 살펴보면, 부여에 대해서는 , , 등이 모두 "그 백성들이 강인하고 용감하다(其人强勇)"라고 적고 있다. 고대 한민족과 유사한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읍루에 대해서는 에서는 "사람들이 용감하고 힘센 경우가 많다(人..

카테고리 없음 2024.08.03

기억의 가장자리 : 고조선과는 다른 부여의 기원

일반적으로 한국사 교과서에는 우리역사가 고조선에서 부여로 이어지며,다시 고구려,백제,신라 등의 삼국시대와 남북국,후삼국,고려,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단일민족의 역사임을 강조하여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단일민족은 하나의 시조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으로 부여의 시조 역시 단군이여야 의미가 성립한다. 부여는 동명이라는 인물을 시조로 삼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부여는 고조선과 같은 뿌리의 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과연 한민족을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을까?이점에 대해선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부여와 고조선의 건국설화 차이 먼저 단군신화와 동명 신화를 비교해보자면 단군신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환웅이 내려와 웅녀와 혼인해 단군을 낳아 아사달에 도읍해 (고)조..

카테고리 없음 2024.07.30

{울지않는 봉황의 나라} -아라가야사-(3) 「제철기술-무기와 농공구」

아라가야의 역사에 관하여 3편 (아라가야의 제철기술과 농공구 및 무기류) 이번 편에서는 아라가야의 뛰어난 철기생산 및 제조기술과 철제 농기구와 공구,다양한 무기류를 다뤄보고자 한다. {아라가야의 철기류,제철제강술} 아라가야의 철기제작 기술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였다.게다가 예로부터 철이 많이나는 변한지역에 위치해있어 철의 생산량 또한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철을 변한시기 해외에 수출했을 정도이며 이를통해 철기가공술의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제철기술을 전수받고 발전시키기에도 충분했다.풍부한 철 생산량은 제철제강술과 철 가공술을 성장시키는데 큰 작용을 했고 그덕에 아라가야는 영토에 비해 수많은 철기와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뛰어난 철기의 제작과 많은 생산량으로 인한 보급은 농기구,무기,갑옷,마구등..

카테고리 없음 2024.07.29

왜곡의 서사시 : 다라국의 신기루

합천 다라국은 독립국이 아닌 대가야의 지방정권이다.(합천지역을 독립국가로 보지 않는 이유) 가야사를 서술함에 있어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다. 바로 합천의 여러 고분군을 비롯한 합천의 지역은 현재 학계가 주장하기를 또다른 가야인 다라국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합천의 유물들을 비롯한 내용들은 다라국의 유산으로 서술해야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말이 꼭 틀린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다라국이 독립국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녕계,아라가야계와 대다수인 대가야계통이 있지만 합천의 일부 유물중에 아라가야계로 보일 경우에 자료로서 서술했을 뿐이다. 다라국은 왜 독립국가가 아닌가? 이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며 얼마든지 반박해도 문제가 없다. 현재 학계에선 "합천에선 다라국..

카테고리 없음 2024.05.27

{울지않는 봉황의 나라} -아라가야사-(2) 「건축과 공예」

아라가야의 역사에 관하여 2편 (고고학적 유물로 보는 건축과 공예,그리고 말이산고분군) 지난 편에는 함안의 지리와 아라가야의 문헌상의 역사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문헌은 사료의 전부가 아니기에 그시대의 기술,발전상을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아라가야의 역사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건축과 공예기술을 정리하고 서술하도록 한다. 그전에 우선 함안의 고분군을 조금 알아보기로 한다. 아라가야의 고고학적 자료는 거의 무덤떼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함안의 무덤을 지나칠 수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함안의 무덤떼는 규모가 거대하여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장 크고 대표적인 무덤떼는 말이산 무덤떼이다. 말이산 무덤떼는 가야읍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카테고리 없음 2024.04.08

{울지않는 봉황의 나라} -아라가야사-(1) 「지리와 문헌상의 역사」

아라가야의 역사에 관하여 1편 (문헌상의 역사, 함안의 지리) 독자들은 한 번쯤은 가야에 관해 배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기 가야연맹은 금관가야, 후기 가야연맹은 대가야를 중심으로 움직였으며 그 외의 가야들은 이름만 잠깐 언급될 뿐 별다른 영향은 못 끼쳤다 여기고 지나가기 다반수였을것이다. 하지만 가야사를 알면 그들은 독자적이고 개성 있는 각자의 문화와 역사를 지녔으며 전기가야는 금관가야, 후기가야는 대가야라는 이분법적인 역사관은 그당시 가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기선 금관가야와 대가야의 그늘에 가려진 제3가야, 아라가야를 다루고자 한다. 아라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에 위치해 있었다. 아라가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안야국, 안라국, 아시랑국, 아야가야, 아나가야를 비롯..

카테고리 없음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