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리학』은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는 일원론을 주장한 스피노자의 걸작으로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이전의 홉스나 데카르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철학적 합리주의의 방법인 에우클레이데스의 엄격한 연역적 방법을 따른다.
즉 하나의 서론에서 두 개의 공리를 이끌어내도록 되어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 모든 부분은 관련된 모든 표현의 이해를 확정하는 정의와 더불어 시작한다. 공리들, 정리들 그리고 증명과 결합되어 있는 설명이 이후 뒤따라 나온다.
그 시대의 표준적 철학자인 데카르트와 달리, 스피노자는 더 이상 의심에 의거해 진리를 기초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플라톤이나 신플라톤주의, 쇠렌 키르케고르같이 완전성에 관심이 있었다.
신, 자연 혹은 인간의 자유의 가능성 등 어디에 방향을 두고 있든 간에 모든 인식은 최고의 목표인 단적인 선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우리가 보통 윤리학이라 생각하는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사실상 정치를 제외한 철학 전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윤리학』라는 제목을 썼다. 스피노자는 각 부분에서 각각 신에, 인간의 정신에, 격정의 근원과 지배에, 그리고 지성의 힘에 복종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해 다룬다.
백과사전적인 이 책에서 수학적 기하학적 방법은 지식을 그 내적 필연성에 따른 '산출'로서 확실하게 하는데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신은 데카르트에게서처럼 진리의 보증자도 아니고 파스칼에게서처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종교적 신앙의 대상도 아니다.
의식철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존재철학과 자연철학 그리고 도덕철학의 한 부분으로서 신은 완전하면서도 유일한 실체로 간주된다. 이 일원론은 창조된 두 실체를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는 데카르트의 이원론, 혹은 창조되지 않은 실체인 신까지 포함한다면 데카르트의 삼원성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려 한 시도였다.
존재하는 유일한 실체인 신은 자기 자신의 근거이다. 현실의 다양한 형식은 신의 속성에 다름 아니다. 모든 사물이 신에 내재하고 신이 모든 사물에 내재한다는 이 생각은 "신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있다"라는 범신론으로 흘러간다. 쉽게 자연은 신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자연은 사실상 세상 만물을 지칭한다. 그렇게 스피노자는 세상을 넘어서는 초월적 신(神) 개념을 배제하고 하나의 신 개념에서 출발하는 체계를 세웠음에도 당시 학계로부터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윤리학』에는 정치철학이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철학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점만이 아주 간단하게 시사되어 있다. 스피노자의 기본사상은 탁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데 말할 필요도 없이 종교적 규정과 정치적 규정은 철학적으로 기초한 인식, 즉 지식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스피노자는 그것이 유대교든 당시 네덜란드에서 지배적이었던 엄격한 칼뱅주의든 간에 상관없이 외적으로 주어진 권위적인 모든 삶의 형식과 대결했다. 그것들의 자리에 자신의 수동적 정념인 욕망, 기쁨과 슬픔 등이 아니라 능동적 정념인 강함(성격의 강인함)에 의해 각인된 인간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삶이 들어선다.
『윤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결국 자기보존 이외에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개별자가 홀로 자기보존을 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그는 사회에 진입하며, 국가 안에서 스스로를 조직한다. 정부가 평화와 자유를 위해 힘쓸수록 국가는 더 안정적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 시민들의 폭동이 일어나 당장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국가에 양도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무엇에 의해서도 제약될 수 없는 '생각할 자유'이다. 비(非)기하학적으로 고안된 그의 정치철학의 주저서인 『신학정치학 논고』에서 '생각할 자유'는 '철학할 자유'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스피노자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사유가 종교적·정치적으로 위협받는 경험을 했었다. 그는 이 저작에서 자전적으로는 이 경험과 대결하며, 철학사적으로는 홉스의 철학과 대결했다. 그는 “국가는 참으로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종교문제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권위를 갖는다"라는 견해를 홉스와 공유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는 홉스와 다르다.
한쪽으로는 그는 훨씬 더 일관되고 도발적으로 법(권리)과 권력을 등치시키는 어떤 규범적 요소들과도 상관이 없는 자연주의적 국가이론을 추구한다. 하지만 반대쪽으론 그는 철저한 자유주의적 전회를 시도한다. 신학-정치학 논고에서는 이름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국가의 목적은 진실로 자유이다(제20장).
『윤리학』이 완성된 1675년에 그는 정치철학을 새롭게 다루기 시작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장을 시작하면서 끝나버린 이 저작 정치론의 주제는 자유의 사상이였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 사상은 한 나라의 복지 상태를 기초하며, 이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평화를 촉진하고 국제적으로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우월함을 드러낸다고 했다. 말하자면 이 저작은 완전한 무역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허용하는 타협 없는 종교적 자유 와 정치적 자유를 구축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시민들의 자유의 이름으로 홉스의 복종계약을 거부하며, 세속의 주권자가 종교문제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는 공적인 권력의 제약을 새롭게 도입한다. 즉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의지한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가능한 한 많은 개인이 참여하는, 서로를 통제하는 위원회 제도의 필요성을 제도이론적으로 정당화한다.이른바 '절대적 통치'이다.
'절대적 통치’는 정치체제의 종류와 관계없이 충분히 많은 사람이 통치에 참여하면 통치의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통치 원리로서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민주주의의 의미를 확장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할 수 있고 공산국가에서 흔히 있는 독재적인 인민민주주의와 같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왜곡할 수도 있다.
절대적 통치가 다중의 참여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다중을 정치에서 배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중의 배제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자유주의적 정치사상을 지녔고 공화국 체제를 옹호했었기에 홉스와 달리 민주국가를 최선의 국가로 보았다. 그는 군주국가,귀족국가,민주국가의 통치체제를 설계하고 운영원리를 서술했는데 안타깝게도 민주국가를 서술하다 사망하며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알 수 있는 점은 인민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이란 문제가 있어도 자유민주주의가 있는 한 민주국가는 최선의 통치체제라는 점이다.
'사회-정치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상의 오명을 쓴 철학자들 : 마르크스와 니체 (10) | 2024.12.03 |
---|---|
"마르크스는 탈성장을 원한적이 없다" : 탈성장,생태사회주의 비판 (3) | 2024.09.17 |
칼 마르크스, 붉은 유령의 생애 (16) | 2024.09.02 |
"공산주의는 진실로 무정부주의다" : 공산주의의 실체와 왜곡, 그리고 거짓 (1) | 2024.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