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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신화의 그림자 : 공산주의의 진실과 오해

운사(云史) 2024. 8. 20. 12:46



공산주의의 창시자,칼 마르크스

 
1.공산주의는 무엇인가
 
엥겔스가 쓴 "공산주의의 원리"의 18단락에 나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목적:


"모든 자본, 모든 생산, 모든 교환이 국민의 손에 집약되면 사유 재산은 저절로 사라지고 화폐는 불필요해질 것이며 생산이 확대되고  인간은 크게 변할 것이다. 남아 있는 오래된 경제적 습관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평등임금이나 정부의 억압적인 통제가 아니라 파괴적인 계급 분열이 없는 노동자의 생산성으로 평등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의 평등한 분배 뒤에 숨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래 의도는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였다.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것을 생산할 것이고 더 많이 생산될수록 사회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그렇기에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수록, 여전히 동일하게 유지되는 수익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결국에는 엄청난 양의 상품이 생겨서 그 양만으로도 모든 금전적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언제든 누군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서 가져갈 수도 있는 수준일 정도로...
 
 


"공산주의는 국가도 없고 돈도 없고 계급도 없는 사회이다"


이 설명은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의 작업을 따르며 공산주의를 한마디로 가장 잘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왜곡하지 않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용한다.
칼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를 창안하고 공식화한 기본 사상가로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폭넓은 비판을 썼고, 그의 4권짜리 주력 저작인 『자본론』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기초이며, 새로운 이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구축되었고 사회주의의 여러 분파와 공산주의의 여러 분파를 형성하게 이르렀다.
이중 마르크스의 작업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주창한 사상은 우리가 알던 공산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아니 애초에 그들은 그냥 마르크스를 이용했을뿐, 단 한개도 그의 사상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 이후의 우리가 아는 독재적인 공산주의를 '전제적 공산주의'로 지칭하기로 하고 여기서 말하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진정한 공산주의'라고 말하기로 한다.



2.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노동자가 혁명을 통해 국가를 장악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형성하는 체제로 정의하며, 노동자가 생산 수단인 작업장을 통제하여 더 이상 부르주아지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는 체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국가를 필연적으로 독재적이라고 여겼고, 자본주의의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독재라고 불렀다. 안타깝게도 국가에 대한 그의 더 자세한 견해는 유실되거나 자신이 계획한 모든 내용을 작성하기 전에 죽어 대부분 기록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사회주의가 되려면 국가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그들이 자신의 작업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그는 '국가가 공산주의를 형성하기 위해 "사멸"할 것이다' 라고 했다.(사실 엥겔스가 이 문구를 만듬)


이 한 문구는 마르크스 자신에 의해 대부분 설명되지 않았으며 이것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좌파 사상가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있었지만 정의는 분명하다.


사회주의,그리고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노동자가 정부를 통제하고 정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고 고용주로부터 작업장의 소유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반면,진정한 공산주의는 국가도 없고, 계급도 없고, 돈도 없는 정부 없는 사회이며, 어떤 사람들은 이를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도 있다. 주로 마르크스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두 사상은 노동자에게 노동량에 정확히 비례하는 공정한 물질적 보상이 이뤄지는 형태라는것을 공통적으로 지닌다.그래서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단계이자 나중에 사멸해야될 사상을 사회주의로 보았다.

대신 사회주의는 국가가 그 정당한 보상을 주는것이고 공산주의는 원시적인 사회처럼 자기 노동에 자기가 이익을 얻는 것을 추구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볼 수 있듯 가장 권위적이고 독재적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화살을 공산주의와 마르크스로 돌렸다.그들은 마르크스를 추종하면서도 마르크스를 가장 잔인하게 이용한다. 그는 그런 사상을 가진적이 없는데 말이다.


3.공산주의는 무정부주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


많은 무정부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혁명을 통해 직접적으로 달성되어야 하며 사회주의 단계를 건너뛰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무정부주의자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이유는 권위가 그 소유자를 부패시키고 희생자를 타락시키며, 국가는 결코 권력을 포기하지 않고 결코 자발적으로 쇠퇴하지 않을 것이라는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권위와 국가는 항상 무력으로 파괴되어야 한다고 하며 그것은 절대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 것라고 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을 보면 어딘가 비슷한것이 생각날텐데 위에서 말한 공산주의와 비슷하다.

그렇다.진정한 공산주의는 무정부주의이고 무정부주의는 공산주의이다. 실제로 그들은 동의어나 다름없다. 둘 다 상호 지원, 사랑, 개인의 자율성, 집단적 협력, 공정성, 형평성, 자유, 인류 및 자연과의 조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를 대표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것은 공산주의이자 무정부주의이다.

우리는 공산주의는 이름그대로 평등하게 분배하기 때문에 무정부와는 거리가 멀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시 공산사회를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원시적인 물물교환 사회 때가 진정한 공산주의다.

그러한 관점에서 현재 공산주의 국가들은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며 가장 모순되고 대립적인 공산주의를 가장한 사회주의이거나 국가자본주의이다.

지구상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실현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니,공산주의 국가라는것 자체가 모순이다.


4.공산주의는 모두 동일한 보상을 받는다?

항상 공산주의를 설명할 때 나오는 가장 심각한 오류는 '공산주의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해 일할 의욕을 감퇴시키고 생산성이 낮아져 가난하고 망한것'이라고 하는것이다.
학교든 세간이든 널리 퍼져있지만 공산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거니와 멸망요인은 거의 미신에 가까운 허무맹랑한 소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국가는 전제적 공산주의로 앞서 말한대로 20세기 냉전의 축이였던 공산세계다.
지금의 독재국가들 말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다. 칼 마르크스 자신도 19세기에 이 아이디어를 부정했다.

“진정한 공산주의”는 정부도 없고, 재산도 없고,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필요한 모든 것을 받는 사회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는 분명히 공산주의가 아니며 공산주의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어기서 말하는 공산국가는 사회주의거나 국가자본주의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흔히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공산주의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 따라 보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더 많은 일을 하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어렵거나 위험한 직업도 더 나은 보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어리석고 불공평하다고 여겨졌었다.

우선, 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노동량에 정확히 비례하는 물질적 보상이 완전히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의 실현이며, 카를 마르크스 이후의 블라디미르 레닌도 이 뜻을 고수했다.


예를들어,구소련에서는 능력과 공헌에 따라 급여를 받았었다. 일을 잘하면 승진하고 돈도 더 많이 받는다. 매일 술에 취해 출근하면 사장 아들이라도 최하위에 머물렀다. 그것은 거의 능력주의였다. 박사학위까지 대학은 무료였고, 오로지 성적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보다 더 평등해 보일 지경인데 한국에선 재산이 너무 많이 작용하는 반면 소련은 이와 달랐다.

모두에게 기회의 평등을 줬고 대신에 잔인할 정도의 능력주의를 추구했다.그렇기에 도태되면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다.소련은 국가 자본주의에 가장 가깝다.

마르크스-레닌주의도 비슷한 사상이며 이는 사회주의에 속하기도 한다.소련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루기로 하고 무엇이 됐든 무조건 동일한 보상은 허구나 다름이 없다는것이 밝혀졌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소련은 자본주의보다 능력주의였다.애초에 사회주의가 공정한 보상을 추구하니 능력주의를 추구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능력주의는 당연하게도 기회와 보상의 평등을 가져올 뿐 분배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소련은 자본주의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래서 학자들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회와 노동량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평등을 추구한 국가자본주의라고 칭한다.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에 속한다.

결국 두 사상의 본질만 보더라도 공정한 보상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보상이 다 같아서 망했단 것은 현재도 유효하다.

우리는 이미 북쪽의 독재국가 때문에 경계해야 하는 이유로 적개심을 키우기 위해 부정적으로 비추려고 하는것이란걸 이해하지만 그것은 독재국가라서이지 공산주의 때문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이유 또한 알수 없게 되고 나중에 극단적이상주의를 꿈꾸는(특히 대학생들)자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한다면 어떻게 반론하겠는가?

그렇기에 마르크스의 근원적인 사상을 공고히 하고 배워야 하며 마르크스를 악용하려는 자들을 막도록 대비해야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을 비판하기위해 자본론을 저술할 만큼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공부했다.

그렇기에 우리도 공산주의를 분명히 하고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아야한다.

역사가 반복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5.공산주의(사회주의)는 내것을 소유할수 없다는 오해

흔히 생산수단을 국유화 하는지,민영화 하는지로부터 비롯된 착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개인은 내것을 가질 수 있다.

내 차,내 음식 등 내것의 개념은 분명했으며 잉여생산물을 가질 수 있지만 잉여생산물을 창출하는 공장같은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었다.흔히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국유화 했으며 자본주의에서는 반대로 민영화 했다.


예를 들어, 소련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오로지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집주인”은 없으며 주택은 국가 소유이며 개인이 받는 주택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기여에 비례한다. “공장 소유주”는 없으며, 공장도 국가 소유였으며, 공장을 운영했다면 중앙위원회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에 따라 기여도가 비례했다.또 대규모 토지 소유자는 없었으며 농장은 집단적으로 운영되었다.


게다가 많은 사회주의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특혜”였다. 더 나은 상품을 판매하는 특별한 지위가 필요한 특별한 상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외국산 상품이 아니라 더 좋은 음식만 있었는데 이는 종종 "간 척도"라고도 불렸다. 이는 구입할 수 있는 간의 유형에 따라 사회에서의 당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인데 못 사거나, 돼지간, 쇠고기 간, 송아지 간이 있을때. 송아지 간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 할 수 있다.





6.“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엄격히 반대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싫어한다.”

이 오류는 냉전에서부터 비롯된 착오이다. 마르크스에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논리적으로 반대되는 위치에 있지 않는다. 오히려 공산주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 길을 내준다는 점에서 필요하고
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의 첫 페이지에서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인간의 활동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고 이집트 피라미드, 로마 수로, 고딕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경이로움을 이루었다… 그것은 모든 이전의 민족의 탈출과 십자군을 그늘에 가린 원정을 수행했다."

"부르주아지는 생산 도구의 끊임없는 혁명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생산의 끊임없는 혁명, 모든 사회적 조건의 끊임없는 교란, 영원한 불확실성과 동요. 부르주아 시대를 모든 이전 시대와 구별하라.”


즉,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엄청나게 생산적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가 사회적 관계를 교란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좋은 일이다.




마르크스는 자유 무역에 관한 연설에서 자유 무역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설명했다. 자유 무역은 파괴적이고 사회 계급 적대를 한계점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현상으로 간주했으며 마르크스에게 내부 모순과 갈등은 자본주의의 생산 동력인 동시에 자본주의를 근절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실, 마르크스와 대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순을 강화하고, 네오마르크스주의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가 말했듯이 "과정을 가속화"하기를 원하기에 이런 오류는 성립하지 않는다.




7.자본주의는 독재가 없고 민주적인가?

누군가 지구상의 모든 국가, 심지어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이라도 동시에 독재 국가라고 주장한다면 믿겠는가? 우리는 보통 '민주주의'와 '독재'는 반의어로 이해되고, '민주주의 독재'는 모순처럼 보일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에 대해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를 사회 계급 간의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의 산물이자 지배 계급이 노동 계급의 반란과 착취를 종식시키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로마 공화국 기간 동안 국가는 해방을 위한 노예와 자유 노동자의 투쟁을 억압함으로써 노예를 소유한 귀족의 이익에 봉사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 남부에서 국가는 노예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와 민병대를 모두 배치함으로써 크고 중간 규모의 노예 보유 농장주와 대서양 노예 무역으로 이익을 얻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다.

전쟁노예를 팔고 있는 델로이의 상인들,노예는 로마를 이루는 중요한 근간으로 가정에서 산업까지 쓰였다.
미 남부의 대서양 노예 무역


그리고 오늘날 미국 국가는 자본가와 자산을 소유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우리가 '민주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부가 선출된 대표자들 로 구성된다는 것이라면 , 물론 미국도 모든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민주적이다.

그러나 "민주적"이라는 말을 통해 정치와 정책이 국민의 의지나 국민 전체의 이익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라면,
미국을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부르주아 공화국 , 부르주아 독재 하의 공화국이다. 즉, 우리가 대중 참정권을 갖고 선거에서 투표하더라도 우리가 선출하는 대표는 실제로 우리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자본가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편협한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다.

단순히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지갑으로 투표”함으로써 정책을 통제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거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이것을 꽤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지만, 이것이 실제로 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는 점은 지적할 가치가 있다.

이익 집단과 일반 시민은 독립적인 영향력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로마 공화국, 남북 전쟁 전의 미국 남부가 "민주주의"였던 것처럼, 노예 소유자와 폭리주의자, 노예 독재 , 무산 자유 노동자, 소작농 등 극소수 계층만을 위한 체제였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도 단지 자본가들을 위한 "민주주의"일 뿐이며, 박탈당한 계급에 대한 자본주의 독재일 뿐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를 무시하더라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상반된다.사회주의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다를 바 없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중시한다면 평등과 거리가 멀다.
평등하다면 개개인의 명예,지위,재산 등에 불평등이 없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자본주의는 불평등하다.
하지만 이 서로 상반된 경제,정치체제는 현존하는 어느 체제보다 좋은 수단이다.

8.사회주의는 비민주적인가?

그렇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치 체제 사이의 주요 차이점은 대의민주주의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어느 계급이 정치적으로 권한을 부여받았는가, 즉 국가의 "계급 성격"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의 대표자가 다음에 그들을 억압할 사람에게만 투표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올해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탄압을 받도록 '선택'할 것인가?”이다.

반면에 사회주의의 발전은 자본주의 독재를 타도하고 새로운 계급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끄는 억압받는 계급에 대한 독재의 제도로 시작된다. 발전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노동계급 권력의 도구이며,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정치적 대표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노동계급이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실제로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다.

물론 어떤 대의 체제에서도 일부 노동자 개인의 이익과 집단으로서의 노동계급의 이익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결함"은 계급 성격에 관계없이 모든 민주주의에 내재되어 있다.그리고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이 사회주의는 국유화를 통해 권한이 강한 거대한 정부를 가지게 되어 독재로 변질되기 매우 취약해서 시민들을 억압하고 혹사시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그렇기에 결코 민주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론적으로는 민주적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단일 당사자가 클래스를 정확하게 대표할 수 없으며 여러 당사자가 효과적인 대표를 보장한다고 반대한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부르주아 정치인이 반복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두 정당만이 의회에 대표권을 갖고 있는 미국을 보든, 소수의 정당이 대표성을 갖고 있는 영국이나 캐나다를 보든, 우리는 어디에서도 노동자의 이익이 대표 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사실, 높은 지출 또는 낮은 지출, 자유방임주의 또는 케인스주의, 고립주의 또는 개입주의 등 경쟁적인 정치 프로그램을 가진 부르주아지 분파가 있다 .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주의 계급 이해관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결코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우리"의 대표자들은 부르주아지의 서로 다른 "측면"일 수도 있지만 항상 한쪽 또는 다른 쪽에만 봉사한다. 부르주아 정당 간의 "선택"은 동일한 독점 기업이 소유한 서로 다른 브랜드의 스낵 간의 "선택"만큼 의미가 있다.

예를들어, 록헤드 마틴의 경우 대통령 집무실을 민주당이 차지하든 공화당이 차지하든 상관이 없다. 주주들은 어느 쪽이든 계속 증가하는 국방비로 주머니를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에 관해 우리는 진실은 두 가지 대조되는 견해 사이의 타협이 아니며 분파에는 독립적인 대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은 기껏해야 겉모습일 뿐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반대되는 이익이 표현되도록 허용하는 반혁명의 수단이다. 따라서 관료화와 자본주의 복원에 맞서 싸우는 것은 정당 다원주의가 아니라 계속되는 계급투쟁, 비판과 자기비판에 대한 맹렬한 집착, 대중의 정치 교육과 참여를 통해 해결되는 문제이다.






9.진정한 공산주의 국가는 건국된 적이 없다.


사회경제적 체제로서의 공산주의는 한번도 달성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한다. 사회주의가 존재하는 곳 어디에서도 공산주의의 실제 조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절대 달성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타당성을 가지고 사용되는 비난은 아니다.

오히려 혁명이 공산주의를 완전히 실현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의 역사적 일견을 모범과 영감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자본주의를 견제했던 인류의 모험적인 시도와 패배로부터 보이는 사상과 백일몽의 민낯을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대로 알아놔야 한다.


그럼에도 역사속에 공산주의와 비슷한 사회가 세워진 몇가지 사례를 보자면,

1936년부터 9년까지의 스페인 내전에서 무정부주의 생디칼리스트 연맹인 CNT FAI이다. 카탈로니아의 토지를 장악하고 그들이 말하길 진정한 해방 사회를 창설했다고 하는 이 사회는 무정부주의와 다르지만 주요 유사점이 있는 무정부주의 형태이다.

생산, 생활 수준, 개인 자유의 급진적인 확장을 통해 무정부주의/공산주의는 완전히 달성된 적이 없지만

카탈로니아에서 우리는 무정부주의가 나타날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전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가까운 무정부주의의 또 다른 예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부터 21년까지 존재했던 우크라이나 자유 영토이다.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위치한 이 부대는 네스터 마흐노(Nester Makhno)와 그의 흑군(Black Army)이 지휘했는데 그의 지도력 스타일은 순전히 무정부주의적이지 않았고, 비록 그것이 깊이 자유주의적이고 좌파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창설되지도 않았다. 자유 영토는 결국 붉은 군대에 의해 압도당하고 합병되었는데, 이는 볼셰비키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타당성을 훼손할 볼셰비키에 의한 노동계급 운동의 배신의 역사의 초기 사례였다.



10.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은 없다.


[1]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극악무도한 오해를 논할 때는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 즉 소련에 대해 논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공산주의는 분권화되어야 하고, 소련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되어 있었다. 소련은 여전히 농민과 기타 노동자, 그리고 특권을 지닌 관료적 정부 계급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계급을 폐지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는 사장 대신 노동자들을 착취했고 소련은 또한 막대한 불평등과 권위뿐만 아니라 여전히 돈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정부는 공산주의와 정반대되는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이였다. 정부 선전에서는 소련이 공산주의라고 말했지만 이는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골적인 거짓말이였다.그렇기에 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소련이 사회주의조차 아니었고 단지 국가 자본주의 체제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신부르주아지, 정부, ‘전위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민간 자본가와 기업을 관료적 국가 기구로 대체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들은 생산수단(공장, 장비, 천연자원)을 통제하지 못했지만 국가는 통제한 것이다.

소련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였으며 다양한 점에서 레닌주의 또는 스탈린주의일 수 있지만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며 어느 것도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이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창안한 이론인 레닌주의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것은 공산주의라고 주장했지만 현존하는 가장 반공산주의적인 두 가지 개념, 즉 국가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국가 자본주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자신을 합법적인 이데올로기로 제시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척할 뿐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실 국가자본주의이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소련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국가에 대한 모든 비판은 정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임에도 말이다.




[2] 중국

내가 주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설명은 중국에 관한 것이다. 1949년에 완성된 중국의 혁명은 마오쩌둥주의였다. 마오주의는 극도로 억압적인 정부를 원하고 공산주의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극도로 권위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마오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더 가깝지만, 그 반복에서는 여전히 국가 자본주의 체제로 끝났다.

국가는 마오주의의 생산수단을 여전히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극도로 억압적인 신부르주아지 정부 계급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에는 여전히 많은 권위, 사회 계층, 돈이 존재한다. 실제로 국가는 마오주의 치하에서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학살했다. 마오주의 또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 자본주의이다.

오늘날 중국은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혼합 경제를 가지고 있다. 일부 산업은 부르주아지와 그 기업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일부는 국가와 신부르주아 계급이 소유한다.심지어 민간 착취와 국가 착취는 함께 진행된다. 중국은 대부분의 국가보다 국가가 소유/통제하는 산업의 비율이 더 높지만 여전히 개인 소유도 많고 현대 자본주의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다.


[3]북한,베네수엘라,쿠바,베트남

북한도 중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것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며, 결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며, 권위주의적 국가 자본주의 통치 하에 있다.더 나아가 사실상 파멸적인 김부자 독재통치이다.

베네수엘라도 사회주의는 아니다. 혼합 경제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보다 국영 산업과 서비스의 비율이 더 높으며 개인 소유, 돈, 계급, 권위가 많고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통제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쿠바와 베트남 역시 국가 자본주의 하에 있었다.
비록 소련이나 마오쩌둥주의 중국보다는 덜 권위주의적이었지만 여전히 꽤 권위주의적이였다.
현재는 국가 자본주의와 민간 자본주의를 결합한 더욱 혼합된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마치는 말-

글을 여기서 끝마친다.

현재 인터넷상에선 여전히 사회주의,전제적 공산주의와 진정한 공산주의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글이 넘쳐난다.

언론,블로그,지식인,유튜브 지식채널까지 각각 판이하고 모호하게 설명하며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 국가에 살며 한때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주의에 대해 모르는게 말이되는가.
만약 공산주의가 나쁘기 때문에 배우는 자체가 이단이라면 오산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본질이 후대에 의해 왜곡되었다.

나쁘기 때문이라년 오히려 적을 알기위해 적을 이해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또 마르크스를 악용하고 잘못된 이해를 통해 심각하게 변질된 이 사상을 추종하는 자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공산주의의 본질과 마르크스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사회주의,반산업주의,탈성장 등 최근의 극단적 좌익계열의 사상적 기반이라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한다면 논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분명히 정의하고 마르크스를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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