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와 니체는 아마 현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논란 많은 철학자이다. 비록 우리에게 철학자이자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창시자로 잘못 알려진 그들은, 현재 자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끔짝한 만행과 악용하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비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정치 철학자,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는 표면적으로는 정반대로 보인다.
마르크스가 이성을 옹호한 반면, 니체는 열정을 옹호했다. 마르크스는 집단을 믿었지만, 니체는 개인을 옹호했다. 마르크스는 대중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해자였던 것에 반해 니체는 '무리'를 혐오했고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평등을 추구했고 니체는 위계를 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독일인이었고, 영국-스위스-이탈리아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둘 다 돈 문제가 있었고, 건강이 나빴으며, 흉터가 두 개 있었고,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특출난 수염이 있었다. 둘 다 공격적인 어조를 쓸 수 있었지만, 둘 다 걸작이라고 믿는 것을 끝내지 못했다. '자본론'과 '권력에의 의지'이다. 둘 다 살아 있는 동안은 대체로 무시당했고 사후에야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공통점은 왜곡된 불명예이다.
마르크스와 니체는 사후에 찬사를 받았지만,재앙으로 찾아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제자들은 이 천재들보다 훨씬 덜 교활하고, 잔혹하며, 훨씬 더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천재들을 권력의 수단으로서 사상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교묘히 왜곡하여 사용했다.
그 결과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
마르크스나 공산주의에 관해서는 이미 다룬 바 있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우선 공산주의를 짧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와 현존하는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공산주의와 다르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평등임금이나 정부의 억압적인 통제가 아니라 파괴적인 계급 분열이 없는 노동자의 생산성으로 평등하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의 평등한 분배 뒤에 숨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래 의도는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였다.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것을 생산할 것이고 더 많이 생산될수록 사회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그렇기에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수록, 여전히 동일하게 유지되는 수익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결국에는 엄청난 양의 상품이 생겨서 그 양만으로도 모든 금전적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는 계급도 없고,국가도,화폐도 없는 사회이다.
말 그대로 원시 공산사회 할때, 그 물물교환하던 사회이자 나의 노동으로 그대로 가치를 받는 노동량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다. 예를들어 2시간동안 창을 만들었으면 내가 쓰니까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은셈이다.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국가가 없다니?
사실 공산주의는 무정부주의며 둘은 동의어이다.
국가가 사멸해야되기에 현존하는 모든 공산국가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소련은 국가자본주의,중국은 마오주의,북한은 그냥 독재였으며 이들은 초반 지지기반을 끌어모으기 위해 마르크스를 이용했을뿐 그의 사상은 단 한번도 따른적 없고 그는 그저 정당성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을 뿐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는 철학자였고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잘못 알려진 사실중 간단하게만 보자면,
마르크스는 '거짓 의식'이라는 용어를 한번도 사용한 적 없고 계급 투쟁과 집단에 대해 일편단심이 아니였다.
마르크스는 개인의 발전을 믿었기 때문인데 그의 공동체주의 철학은 그러한 사회에서만 개인이 자유와 자기 실현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에 기반을 뒀다.
그와 엥겔스는 1846년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드러난다.
'공동체[다른 사람들과]에서만 개인은 모든 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을 갖는다. 따라서 공동체에서만 개인의 자유가 가능하다.
또 마르크스는 오늘날 맥도날드를 파괴하는 활동가들이 사용하는 용어인 '반자본주의'가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말할 수 없는 진보와 번영을 가져왔다고 믿었다. 공산당 선언 (1848)에서 그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활동이 가져올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집트 피라미드, 로마 수로, 고딕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경이로움을 이루었다. 그것은 모든 이전의 민족의 탈출과 십자군을 그늘에 가린 원정을 수행했다'고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시간이 다 되었고 사회가 다음 단계인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전체주의, 노동 수용소, 강제 추방, 인종 청소는 칼 마르크스의 글과 철학과 거의 관련이 없다. 그래서 프랜시스 윈은 그의 전기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에 경악했을 것"이라고 쓰기까지 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비참하게 오해받은 적은 없었다.
[니체에 대한 오해]
마르크스가 공산진영의 정치적 악용,후대의 자칭 제자라는 자들의 왜곡으로 불명예를 얻은 것처럼,
니체 또한 나치와 파시스트의 자신의 글을 숭배하며 이용했다는 것에 경악했을 것이다.그는 나치즘,파시즘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치와 달리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들을 혐오했는데, 그들은 원망과 시기의 악의적 정신을 구현한 존재였다고 보았다. 반유대주의는 약하고 낮은 사람들을 위한 감정이었으며, '누군가는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돼!' 같은 마인드였다.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에서 비천한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이유를 '그들의 에너지와 더 높은 지성, 그들의 자본 정신과 의지가 오랜 고통의 학교에서 세대를 거쳐 축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썼고, 이 더 높은 사람들의 성공은 '시기와 증오를 일깨워' 유대인들을 '모든 가능한 공적, 사적 불행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썼다.
그는 유대인을 (기독교인)독일인 친구와 호의적으로 대조하기도 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게으른 습관으로 사지를 쭉 뻗고 휴식을 원하는 독일인들에서 금발 머리, 푸른 눈, 얼굴, 언어, 둔감한 태도에서 지성이 부족한 것을 보라.'
니체는 독일인(반유대주의,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독일 군국주의도 싫어했다. 이는 1876년 Untimely Meditations 에 실린 그의 의견 중 드러나는데, 그는 최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하면 독일에서 군국주의가 부상하고 문화가 쇠퇴할 것이라고,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에 상응하는 반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한 영국 평론가는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 많은 영국인이 20세기 초 니체 숭배의 탓이라고 비난했던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테이토매니아는... 니체의 마음과 영혼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은 니체의 피부에 싸인 프로이센의 광신도의 마음입니다.'
니체가 Kampf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 그는 무장 투쟁을 의미하지 않았고, 전쟁은 더더욱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인 의견을 극복하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개인적 투쟁을 의미했다. 니체는 뉘른베르크 집회에 혐오감을 느꼈을 극도의 개인주의자였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몹시 싫어했던 군중 심리와 생각 없는 집단행동을 정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니체와 마르크스의 과오]
하지만 우리는 20세기 파시스트와 공산주의 정권이 니체나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자행한 범죄를 그들에게 있어 완벽한 무죄라 할수 있을까?
둘 다 전쟁을 옹호하거나 죽음의 수용소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각각 무책임하고 순진했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군사적 언어를 사용한 데에 무책임했다. 그의 글은 군사적 은유와 생존에 대한 호전적인 수사학과 '주인'과 '퇴보한 자', '노예', '약자'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는 인종차별주의자, 우생학자, 권력을 숭배하는 파시스트들의 먹잇감이었다.
이 호전적인 비난의 대부분은 그의 미완성 노트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책인 「권력에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사후에 출간된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누나가 반유대주의자와 결혼하여 나치가 되었고, 그녀가 편찬한 「권력에의 의지」가 1920~30년대에 파시스트들에게 가장 열광적으로 읽힌 책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탈성장 글에서도 말했듯이 미완성이고 자잘한 생각을 쓴 노트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단정짓기에 매우 위험한 일임에도 사후 이를 바탕으로 그의 누나가 멋대로 집필한 셈이다.
마르크스 역시 그의 순진함 때문에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예측했듯이, 인간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자비롭고, 기회가 주어지면 사람들이 협력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도덕적 망상에 평화로운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사회주의 사회를 세운다면,최악의 유형이 맨 위에 올라와 권력을 잡을 것이다.
아무리 현명한 솔로몬왕이 통치하더라도 결국 후세의 왕이 타락해서 나라가 사분오열되었듯이,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성인군자들로만 이루어져야 가능한것이며 우리는 그것은 불가능한 전제라는걸 안다.
이것이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에서 얻은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생전 제자를 원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글이 왜곡될 것을 알고있듯이 말이다.
격변하는 시대속 세상을 바꾼 두 철학의 거인,
그들은 후대에게 "제자가 되려하지말고 스스로 생각하라" 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