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의 도래
2010년대 중반 이후, 탈성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기사와 책이 급증했다.
탈성장이란 '성장에 집착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환경주의자의 경제적 주장'으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자원고갈,환경오염과 같은 문제가 생겨나자 아예 성장을 반대해서 인류와 자연을 구하자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짧게 말해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말이다.
탈성장의 지지자들은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 면에서 탈성장론자들은 단순한 경제 성장 이상을 공격하고 있다. 탈성장주의자인 Matthias Schmelzer 가 The Future is Degrowth (2022)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현대 성장 패러다임이 사회적, 물질적 과정으로서의 성장에 기반을 두고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적어도 식민지화와 초기 자본주의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 사상가들은 '현대 성장 패러다임'을 표적 삼아 탈성장 프로젝트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냈다. 탈성장에 대한 요구는 현대성을 전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류와 자연을 위한다고들 하나 인류를 영광으로 이끈 산업들 뿐만 아니라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모든산업을 부정한다. 반산업주의자인 것이다.
그들은 성장을 부정하는만큼 공산주의를 추종하고 이를 통해 정당성과 근본까지 확립하려고 했고 그렇기에 칼 마르크스를 이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그들은 탈성장 공산주의라는 말을 지어내 칼 마르크스는 탈성장주의자라고 왜곡하고 홍보했다.
마르크스에서 파생된 좌파 사상도 많은 만큼 이러한 좌파 환경주의자의 주장에 반대하는 좌파 사상가들도 많다.
그러나 급진적 탈성장 환경주의자들은 사상의 본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의 대부분은 종말론적인 용어로 말한다.
대표적인 탈성장 공산주의자인 고헤이 사이토는 베스트셀러 탈성장 텍스트인 「인류세의 마르크스: 탈성장 공산주의의 아이디어를 향하여」(2023)에서 '인간 역사의 종말'을 예언한다. 도쿄 대학의 철학 조교수인 사이토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생태계가 함께 '만성적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생태적으로 양성인 정체된 공산주의 사회를 요구한 것이다.
탈성장 공산주의, 마르크스의 새로운 얼굴?
[마르크스를 탈성장주의자로 둔갑시키다]
좌파 환경주의자들은 탈성장을 너무나 강력하게 지지하여,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표현하는 일부 사람들은 칼 마르크스 자신이 실제로는 환경 운동가이자 탈성장의 초기 옹호자였다고 주장한다.
이를 처음으로 주장한 자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인 먼슬리 리뷰의 주요 필자인 폴 버켓과 존 벨라미 포스터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비판을 '재발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고 폴 버켓은 「마르크스와 자연: 적색과 녹색의 관점」(1999)을, 포스터는 「마르크스의 생태학: 유물론과 자연」(2000)을 썼으나 큰 화제를 모으진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탈성장 공산주의를 내세운 자는 사이토 고헤이이다.
그거 말하길 마르크스는 '현대적 의미에서 생태적으로 의식적인 사람'일 뿐만 아니라 '탈성장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는 '경제 성장 없이 희소성 이후의 사회를 목표로 하는 생태사회주의의 한 변종'을 옹호했다.
사이토는 마르크스가 지속 가능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생산력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자연의 보편적 신진대사를 훼손하고 심지어 파괴한다고 반복해서 경고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마르크스를 탈성장주의자라고 하는 이유]
사이토가 마르크스를 원시 환경주의자라고 주장한 이유는 마르크스의 1868년 이후, 자연 과학에 대한 수첩을 읽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이토는 마르크스가 1883년 사망하기 전에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태적 비전을 발전시킨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주장한다. 사이토의 견해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생태 사회주의를 넘어서 '궁극적으로 탈성장 공산주의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2022년 가디언 과의 인터뷰에서 이 노트가 마르크스는 지속 가능성과 비자본주의 및 전자본주의 사회가 지속 가능한 이유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냐하면...... 성장 주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상하고 비역사적인 주장이다. 아니,마르크스를 다뤘던 나의 다른 글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알것이다. 게다가 '지속 가능성'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부터, 특히 1987년 유엔 환경 개발 위원회의 '우리 공동의 미래'가 발표된 이후에야 구체적인 환경주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사이토는 '마르크스는 자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유롭고 지속 가능한 인간 발전의 관점에서 생태적 위기를 문제 삼았다'라고 결론내렸다.
즉, 마르크스는 반자본주의를 넘어 모든 형태의 추가 경제 발전에 반대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탈성장주의자들의 왜곡된 해석의 미로
[마르크스가 탈성장주의자라는 논리적 모순]
사이토의 주장에 대한 첫 번째 문제는 1868년 이후, 마르크스의 노트에 대한 그의 리뷰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노트에 의지하여 그가 생각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다른 사람의 글에 노트를 적는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그들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노트만 보면 일치와 불일치를 분간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한 마르크스의 노트는 그 좋은 예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정치 경제학 비판을 쓰기 위해 준비하면서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고전 정치 경제학자들의 많은 텍스트에 대한 노트를 작성했다. 만약 자본론을 읽지 않고 이 노트를 읽는다면 , 그가 실제로 기록한 구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내기 어렵다. 우리가 노트에 담긴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자본론에 대한 발전되고 출판된 비판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1868년 이후의 자연 과학 노트의 문제다. 그건 실제로 출판된 작품의 기초를 형성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생태학 비판'은 없다. 그렇기에 노트에서 생태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감히 결정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파괴적 영향(인간, 사회 또는 자연에 대한)에 대한 설명을 그가 반개발주의자였다는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인간의 생산력을 발전시킨 것을 정확히 칭찬한 정도를 무시하는 것이다. 탈성장주의자의 '마르크스가 선구적인 탈성장 생태주의자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대사 균열'이라는 거짓
두 번째 문제는 마르크스의 생태적 우려가 그의 '대사'와 '대사 균열'에 대한 이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에 있다.
이 균열은 계급 사회와 자본주의에 의해 유도된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말한다. 사이토는 마르크스 사고의 이러한 구성 요소가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억압'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198~90년대에 폴 버켓과 포스터와 같은 사람들이 다시 발견할 때까지 마르크스 생태학은 '주변화'되었고 한다.
사실 자본론의 원래 독일어판의 일부 영어 번역본에 '대사'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게 인간의 자연과의 '대사적' 관계를 지칭할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특정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마르크스가 환경주의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날조이다.
자본론 제1권 15장,'기계와 현대 산업'이라는 제목의 이 장은 산업과 기계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그중 한 구절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토양과의 물질적 상호작용을 언급한다. 원래 독일어 에서는 ' stört sie andererseits den Stoffwechsel zwischen Mensch und Erde ' 라고 되어 있다 .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간과 지구 사이의 신진대사를 방해한다"로 번역될 수 있다.
1976년 펭귄 에디션에서는 '인간과 지구 사이의 대사적 상호작용을 방해한다'로 읽도록 번역되었다. 또한 1887년 새뮤얼 무어와 에드워드 에이블링이 번역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편집한 첫 번째 영어 에디션에서는 같은 문장이 '인간과 토양 사이의 물질 순환을 방해한다'로 번역되었다.
마르크스는 즉시 그의 설명을 이어가며 말했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간이 식량과 의복의 형태로 소비한 구성 요소가 토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토양의 지속적인 비옥성을 위한 영원한 자연적 조건이 작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기술을 개발하고 다양한 과정을 사회적 전체로 결합하지만 모든 부의 원래 원천인 토양과 노동자를 약화시킨다.'
어떻게 번역하든, 마르크스는 인간의 폐기물을 토양을 보충하기 위해 되돌려 보내던 과정이 많은 사람들이 시골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기 때문에 제한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가 여기서 자본주의 농업의 발전된 형태가 토양의 비옥도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의 글에서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 같은 단어 '대사' 또는 Stoffwechsel을 더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그것은 보통 마르크스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형태의 교환을 가리키고 이것은 상품과 화폐의 교환 또는 다른 제품의 교환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에 대한 『자본론』 제1권 3장에서 마르크스는 화폐가 '제품의 교환[ des Stoffwechsels ]에서 단순한 일시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 가치의 독립적인 존재 형태, 보편적 상품'이라고 설명했듯이 말이다.
자본론에는 자연과 관련된 '대사'에 대한 다른 언급이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생태-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린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자본론 : 제3권 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긴 문단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사회적 생산 과정의 '역사적으로 결정된 형태'로 서술한다.
그는 Stoffwechsel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가 자연의 물질적 요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잉여 노동에서 파생된 잉여 생산물이 모든 유형의 사회에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고에 대한 보험'과 '필요성의 발전과 인구 증가에 따른 재생산 과정의 필수적이고 점진적인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같은 문단은 노동 생산성 증가의 이점을 극찬하면서 이어진다.
생산성 향상은 '더 높은 사회 형태'(그에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일 것)에서 잉여 노동의 생산과 물질적 생산에 사용되는 노동 시간의 더 큰 감소를 결합할 수 있다. 이는 생산성과 그에 따른 성장이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서 더 클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마르크스는 탈성장의 정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문단에서 마르크스는 자유에 대한 중요한 요점을 서술했다. 이 문단은 마르크스를 성장과 소비의 반대하는 탈성장주의자로 묘사하려는 급진적인 환경주의자들의 날조를 감안할 때 자세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사실, 자유의 영역은 실제로 필요성과 세속적 고려 사항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만 시작된다. 따라서 사물의 본질에서 그것은 실제 물질적 생산의 영역을 넘어선다.
야만인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자연과 씨름해야 하는 것처럼, 문명인도 그래야 하며, 그는 모든 사회적 형성과 모든 가능한 생산 양식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의 발전과 함께 이 물리적 필요성의 영역은 그의 욕구의 결과로 확장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산력도 증가한다.
이 분야에서의 자유는 사회화된 인간, 연합된 생산자가 자연과의 상호 작용[ Stoffwechsel ]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 자연의 맹목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는 대신 자연을 공동으로 통제하는 데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최소한의 에너지 소모로, 그리고 그들의 인간 본성에 가장 유리하고 합당한 조건에서 달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요성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 너머에서 인간 에너지의 발전이 시작되는데, 이는 그 자체로 목적이며, 자유의 참된 영역이지만, 그러나 이 자유의 영역은 필연성의 영역을 기초로 하여만 꽃을 피울 수 있다.
노동일의 단축이 그 기본 전제 조건이다."
마르크스는 녹색 탈성장주의자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탈성장이 아닌 성장을 지지했다]
위 문단은 원래 독일어에서 "자연과의 상호 작용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은 ' diesen ihren Stoffwechsel mit der Natur rationell regeln '으로 읽히는데, 이는 '자연과 함께 신진대사를 합리적으로 조절한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 어떤 번역을 사용하든, 이 문단은 마르크스가 Stoffwechsel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경제 성장의 해악과 관련된 신진대사 이론을 가지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이 얼마나 오도된 일인지 보여준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사회적, 인간적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생산성 성장을 지지했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탈성장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계몽주의적 사고를 거부하기는커녕,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위의 문단에서 보여 주듯이, 그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인간의 자유에 대한 자연의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1850년대 후반에 쓰여진 자본론을 위한 예비 연구 노트인 그룬드리세( Grundrisse )에서의 마르크스의 사고와 명확한 연속성이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자연의 힘, 소위 자연의 힘과 인간 본성의 힘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지배력의 발전'이라는 자본주의 이후의 가능성에 대해 찬성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후자본주의적 비전'은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과 상당히 일치하는 듯 하지만, 그의 생각은 여러 면에서 그것을 초월했습니다. 그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생산성(1인당 산출량)을 달성하는 에너지 효율적이고 자연을 지배하는 생산 방식을 옹호했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의 영역'을 확립하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마르크스를 탈성장주의자로 둔갑시킨 거짓된 근거]
마르크스는 녹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벨라미 포스터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의 '대사 균열'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치명적인 왜곡의 불가피한 결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보편적 대사에서 깊은 틈을 메우기 위해 사회적 생산에서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포스터와 다른 사람들은 또한 '생태학'과 '대사 균열' 이론이 '마르크스의 정치 경제학 비판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어 또는 독일어로 된 자본의 3권 중 어느 책에도 이러한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말인 '생태학'과 '대사 균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심지어 사이토조차도 '불행히도' 마르크스가 '자본 ' 에서 '대사 균열'이라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이토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대사 균열'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이토가 대사적 균열로 인한 위험에 대한 마르크스의 가정(?)에 대해 제시한 유일한 참고 문헌은 「자본:제 3권」이다. 그런데 거기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지대 발생'을 다루는 47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생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가 현대 환경주의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고작 단일 장의 단일 문단을 읽는 것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894년(마르크스가 죽은 지 10년 후)에 출간된 자본론 3권의 원본에서 그는 농업 인구가 적고 도시 산업 인구가 많을수록 '사회적 신진대사의 상호 의존적 과정, 즉 생명 자체의 자연 법칙에 의해 규정된 신진대사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일으키는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독일 화학자,유스투스 폰 리비히에게 얻은 생각이라고함)
그 결과 한 국가의 경계를 훨씬 넘어선 무역에 의해 운반되는 토양의 활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이다.
다시 한번,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산업화의 조건 하에서 더 빠른 도시화가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데 인간의 폐기물을 사용하는 것이 감소하게 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토양의 영양분을 보충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토지 소유의 변화하는 형태와 자본주의적 발전에 수반되는 도시화의 확대가 농업이 토양의 비옥도를 고갈시키는 것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이토는 반론을 위해 마르크스의 원고 초안을 다시 살피며 엥겔스가 출판하기 전에 이 구절을 '의도적으로 변경'하고 생태적 메시지를 흐리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초안에서 그는 '사회적 대사와 토양의 자연 법칙에 의해 규정된 자연적 대사 사이의 상호 의존적 과정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일으키는 조건 '을 설명했다.
실제로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원고를 편집하는 동안 '자연적 대사'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토양'이라는 단어를 '생명'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엥겔스가 왜 이런 수정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도적이었는지 우연이였는지 알 수 없다.
사이토가 초안에서 마르크스의 의미가 더 명확해진 것은 맞으며 그거 유리하게 사용하는 그 의미에 직접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다.그러나 어떤 버전을 사용하든 마르크스의 사고방식은 같다. 그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가 인간의 배설물을 이용해 토양을 보충하던 이전의 관행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자신이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에게서 따온 이 아이디어를 외삽해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지구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인 경향에 대한 탈성장적인 믿음을 표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다.
사이토는 현재도 마르크스의 출판된 글에서 실제 생태적 사고가 부족한 이유를 자본의 미완성된 본질과 엥겔스의 편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엥겔스가 정직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마르크스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본의 편집에 반영할' 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결과, 사이토는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사이토의 궤변,논리적 오류]
자본론 2권과 3권은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야 엥겔스가 출판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이토는 마르크스에게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면 환경주의적 탈성장 아이디어를 통합하기 위해 3권을 모두 개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아이디어는 마르크스가 자연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에 발전시킨 것이다.
사이토는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론 1권을 완성한 후에야 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1867년 이후로 거의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발췌문과 논평으로 구성된 노트'만 가지고 있다고 사이토는 주장한다.
이 이야기의 타임라인에는 몇 가지 이상한 모순이 있다.
첫째, 사이토, 포스터 등은 마르크스가 1862년에 출판된 리비히의 농업과 생리학에 대한 응용에 대한 유기화학에 대한 반응으로 현대 생태학적 통찰력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출판한 후에야 자연과학 연구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이 리비히 텍스트를 공개적으로 5번이나 언급합니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그룬트리세에서도 리비히의 1842년판 유기화학을 인용했습니다. 이는 사이토가 처음에 제안했듯이 마르크스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1867년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확증해준다.
만약 마르크스의 리비히에 대한 독해가 생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그의 생태적 각성에 영향을 미쳤다면, 왜 그는 자본론 1권 에서 그렇게 중요한 '발견'에 대해 쓰지 않았을까?
게다가, 우리가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생태적 차원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가 1868년 이후에 거의 저작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1868년 이후에 많은 저작을 발표했다. 수많은 논문과 보고서 외에도, 1868년 이후의 저작에는 1871년에 쓰여지고 출판된 '프랑스 내전'과 1872년에 출판된 논문 '토지의 국유화'가 있다. 마르크스는 또한 1873년에 출판된 자본론 제2권 독일어판을 개정했고 상당한 분량의 후기도 썼다.
그리고 1875년에 쓰여지고 1890년에 출판된 마르크스의 고타 강령 비판이 있다. 거기서 다시 한번, 마르크스는 환경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나타내지 않았다. 고타 강령 비판에서 서술하기를....
'자연은 노동과 마찬가지로 사용 가치의 원천이다(물질적 부는 분명히 사용 가치로 구성된다)... 그리고 인간이 처음부터 모든 도구와 노동 대상의 주요 원천인 자연을 소유자로서 대하는 한, 자연을 자기 소유물로 대하는 한, 그의 노동은 사용 가치의 원천이 되고 따라서 부의 원천도 된다.'
이 글은 사이토가 주장하기를 마르크스가 탈성장 환경론자로 전향한 뒤에 쓰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여전히 자연을 인간이 사용할 대상으로 보는 계몽주의적 비전을 계속 표현하고 있다.
만약 마르크스가 1860년대 후반에 정말로 생태적 각성을 겪었다면 사이토가 말했듯이 '1867년 1권 이 출판된 직후 ' 그가 어느 시점에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둘째, 사이토가 다른 곳에서 혼란하게 주장했듯이 마르크스가 실제로 1867년 이전에 환경주의자적 각성을 겪었다면, 왜 자본론 제1권에는 그에 대한 흔적이 전혀 없을까? 마르크스를 더 많이 연구할수록 그가 어떤 종류의 환경주의자라는 주장은 더욱 터무니없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도 마르크스의 완성된 저작에서 환경적 비상사태에 대한 자본주의적 경향에 대한 믿음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성장에 자연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인류에게 생산적 자제를 행사하라고 한 번도 촉구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생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역사를 통해 자신의 우려를 뒤로 보려는 행위의 산물이라고 본다.
[마르크스를 '재해석' 할 수 없는 문제]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비전을 제시하거나 꿈꾸는데에는 자유롭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마르크스의 사상의 본질에 반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편향적으로 '재해석' 함으로써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초월하는 것이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수단의 재수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것은 자본의 생산력의 소멸과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생산 형태'의 필연적인 중단을 초래할 것라고. 사이토는 다시 말해서,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초월을 통해 극복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기술은 지속 불가능하고 파괴적이며 사회주의에 사용될 수 없다'고 썼다.
여기서 사이토는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 경향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을 자연 환경 파괴에 대한 언급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그룬드리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위기 경향이 이윤율의 감소 경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노동의 생산력 발전에 대한 장벽'이 되는지 설명했다. 마르크스가 쓰고 있는 '자기 파괴'는 지구 파괴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이다.
마르크스 자신이 말했듯이, " 자본의 폭력적 파괴는 자본 외부의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조건으로서 자본을 파괴하는 것이며, 자본을 없애고 더 높은 사회적 생산 상태에 자리를 내주라는 조언이 주어지는 가장 두드러진 형태이다."
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 에서 자주 인용한 구절에서 말하기를...
'자본의 독점은 생산양식에 족쇄가 되며, 생산양식은 그와 함께, 그리고 그 아래에서 생겨나 번성했다. 생산수단의 중앙집중화와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외피는 산산이 조각난다.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의 종소리가 울린다. 수탈자들은 수탈당한다.'
현대 기술의 환경 파괴성 때문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징후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명백하게 그는 대중이 자본주의적 사유재산과 그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을 기대했다.
사이토와 같은 사람들은 자본론의 내용을 자기 입맛에 맞추려고 '업데이트'해서 마르크스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대사적'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원하는 만큼 '생태적'이라는 단어를 넣을 수 있다. 이로써 그들은 '대사적 균열'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실제 출판된 작품에는 생산적 발전이 인간 멸종의 지경까지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생태학 이론을 드러내거나 암시하는 내용이 단 하나도 없다.
마르크스가 인류의 자연 지배가 지구 파괴의 전조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상의 비약이다.
그가 '탈성장'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야 한다. 사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시대의 원시적 녹색, 반 계몽주의 세력에 확고히 반대했다.
만약 그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그는 오늘날의 사익과 도덕적 우월을 내재한 반산업,탈성장 환경주의자들과 뒤떨어진 탈성장 이념에 굳건히 맞서 싸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