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역사에 관하여 4편
(고고자료를 기반으로)
{아라가야의 복식}
복식이란 인체 위에 표현되는 모든 옷과 장식을 총괄하여 일컫는 말이다. 복은 주로 몸을 감싸는 의복을 말하고 식은 모자나 관부터 허리띠나 신발까지 여러 가지 장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복식은 몸을 보호하고 위생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회환경에 적응하여 일상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비슷한 복식과 전통으로 소속감을 형성하는 사회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또한 한 국가의 문화와 독자성, 의류 산업의 발달을 보여주며 당대인들의 개성과 미적 센스를 표현해주기도 한다.
아라가야의 복식은 그동안 관찰된 아라가야만의 독창적인 문화에 힘입어 기대받고 있지만, 고대 국가의 복식 재현이 그러하듯 아라가야 복식에 관해서는 문헌도 부족하며 고고학적 유물도 제한적이다.
그나마 관련 문헌과 주변국의 복식으로 유추해볼수 있지만 확실히 추정해주진 못한다. 복식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추정할 수 있는것은 단연 물질적인 증거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은 다음과 같다.
'장신구, 방직구, 수착 직물, 상형토기, 안료 흔적'
비물질적인 증거는 고대 의복이나 동시대 주변국의 복식에 대한 문헌이다.
따라서 아라가야의 복식을 추정할법한 문헌과 주변국의 복식 기록부터 도상 자료, 아라가야의 장신구, 아라가야의 직물과 주변국의 직물, 방직구와 안료 흔적 등을 다룰 생각이다.
내용이 많으니 크게 2편으로 나눈다.
1편는 아라가야계 유물 위주로 다룰것이다. 장신구, 직물, 방직구, 안료 등으로 직접적인 아라가야의 고고학적 자료이다.
2편은 주변국의 문헌기록과 도상자료를 통해 아라가야의 대략적인 복식을 추정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우선 아라가야의 직접적인 유물인 장신구, 직물, 방직구, 염료를 차례로 보도록 하자.
1. 장신구
장신구는 귀족들이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몸을 꾸미는데 사용한 물품으로, 이를 통해 당시 뛰어난 세공술과 뛰어난 미적 센스를 엿볼 수 있다.
크게 대관, 허리띠,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으로 나뉘며 당대 아라가야의 복식 문화를 추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이다.
1) 대관
장신구로써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는 위세품은 단연 관이다. 관은 관모, 대관, 모관, 입관으로 나뉘는데 그중 왕관으로 추정되는 아라가야의 대관이 있다.
바로 말이산 45호분 출토, 봉황 장식 금동관이다.
금동관은 길이 16.4㎝, 높이 8.2㎝로, 길쭉한 관테 위에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세움 장식이 올려져 있고 아래 관테와 윗부분의 두 마리 새 모양 세움 장식이 마주 보는 구도는 현존하는 금동관 중 처음이다.

보다시피 관테는 위아래 2열의 사각형이 투조된 대(帶)이며 위에 서로 마주 보는 봉황 형태의 쌍조문이 묘사되어 있다.
전체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서로를 보며 날개를 펼치고 있고 몸통에는 단엽문(單葉文)이 투조되어 있다. 좌우 봉황의 형태는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데, 우측 새의 머리 위에는 두 개의 뿔과 같은 깃 모양 장식이고, 좌측 새의 머리에는 3개의 깃을 둔 것으로 추정되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혹은 같은 2깃이나 단일 깃일 수도 있다.
날개를 보면 한쪽 날개가 서로 붙어 있으며, 눈은 뚫려 있고 부리는 아래쪽을 향한다. 목은 C자 형태로 바깥쪽으로 꺾였고, 아래 다리에는 깃이 튀어나왔다. 곡선으로 말려 올라간 꼬리 아래쪽에도 사선으로 두 갈래 깃을 장식했다. 봉황으로 추정한 이유는 무령왕릉 출토 환두대도의 봉황문과 비슷해서 그렇다고 한다.

기법은 하나의 동판에 윤곽을 그린 뒤 투조하고, 표면과 이면 모두에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되는 식이다. 소실된 부분이 많지만 좌우측 새의 남아 있는 문양을 참고하여 전체 형태를 추정 복원하면 위와 같다. 그리고 이 금동관은 사각형 투조 부분과 쌍봉황 모두에 전체적으로 2개가 1조를 이루는 소공(小孔)이 뚫려 있어, 이를 이용해 유기질의 관에 추가적인 장식을 고정시켰을 것이다.
봉황장식 금동관은 상하 2열의 사각형이 투조된 부분을 대륜(긴 관테), 마주 보고 있는 한 쌍의 새는 입식(세움 장식)으로 보고, 대륜과 입식이 하나의 판으로 연결된 대관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추정 복원된 대륜의 길이가 16.4cm로 짧은 점, 일반적으로 대륜과 입식을 따로 제작한 후 연결하는 대관과 달리 하나의 판으로 제작된 점, 대륜과 입식에 뚫린 구멍을 통해 모두 모체에 고정된다는 점 등에서 일반적인 대관의 속성과 차별성을 지닌다.
가야 대관은 일반적으로 수지형의 입식을 지닌 신라의 대관과 다르게 초화형 입식이 주류를 이루며, 대관의 중앙에 광배 모양과 같이 넓은 입식을 세운 소위 전액(前額)형 입식도 특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55cm가 넘는 신라의 대관과는 다르게 16cm 가량은 작은편이다. 어린 아이가 쓸 수도 있지만 양쪽 구멍에 장식 겸 끈을 연결해서 고정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차별성은 엄격하게 보면 대관보다는 끈에 의해 같이 부착되는 관식같은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아직 연구가 이뤄져야 하지만 여기선 금동으로 만들어진 '대관'으로 부르기로 한다.
이밖에도 합천 옥전 M3호분 출토 대관이 있는데 여러 이유로 대가야와 아라가야 사이의 문화와 영향을 받은지라 엄격히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논하지 않기는 아쉬워서 다루고자 한다.
이 대관은 관테(대륜)만 이루어진 채로 출토되었다.
폭은 대략 4cm, 이면의 포목 흔적으로 포제의 모체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관테 양쪽 2개의 구멍을 통해 고정되었을 것이다. 아무런 세움 장식이 없는, 말 그대로 띠 형태의 대관은 2세기 가야지역에도 관찰되는데 이는 꽤 오래 지속되었으며 동시에 합천지역이 이렇다 할 독립적인 정치체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2) 허리띠
고대 복식에서 허리띠는 긴 길이의 저고리를 여미기 위한 도구였다. 허리띠는 포백대(하얀 천)와 혁대(가죽띠) 모두 사용되었고, 장식판에 금속 교구 및 금속 과판을 추가하기도 했다. 크게 허리띠는 버클인 띠고리(교구)와 중심부의 장식판인 띠꾸미개(과판), 고정된 장식인 대장식구, 추가적으로 대롱대롱 매다는 장식인 드리개(수식)로 구성된다. 과거 신하들은 품계에 따라 의복을 달리 했는데 허리띠도 이를 나타내기에 신분에 따라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이 달랐고 그래서 허리띠의 색상, 금속제 대장식구의 소재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졌다.
아라가야의 허리띠로 언급되는 유물은 모두 5점이다.
도항리 37호분에서 1점, 도항리 8호분 1점과 말이산 13호분에서 2점, 그리고 도항리 54호분에서 1점이 출토되었다.

함안 도항리 37호분에선 6점의 금동제 과판과 2점의 금동제 교구가 출토되었다. 동판에 금으로 도금했고 과판은 도금된 원두정으로 허리띠에 고정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당시 교구와 방형 과판이 붙어서 확인되었고 상원하방형 과판과 구멍이 있는 방형 과판이 서로 일직선상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허리띠의 구조를 완전히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또한 교구가 2점 출토되어서 원래 대장식구 2점이 부장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도항리 8호분의 출토된 대장식구는 은제 삼엽문 투조 방형 과판 1점, 과판 아래 달리는 심엽형 수식 1점, 띠끝 장식인 대선금구 1점이다. 이는 전형적인 신라양식이며 신라인과의 교류를 통해 유입되었을 것이다.

말이산 13호분 대장식구A는 금동제 수식이 딸린 삼엽문 투조 과판으로 2점이 출토되었다. 과판은 일반적인 삼엽문 투조 과판이 방형인 것과 달리 상원하방형에 가깝고 중앙 부분이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으며 수식은 마제(馬蹄)형과 유사하다.
대장식구A는 중원식 대장식구, 즉 진식대금구와의 관련성이 언급되는데, 이는 마제형 수하부가 서진 대 의흥(宜興) 주처묘의 출토품과 비슷한 형태여서 그렇다. 아마 해상네트워크를 통해 중국식 청자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제작기술도 터득하지 않았나 싶다.

말이산 13호분 대장식구 B는 과판과 수식으로 구성된 금동제 대장식구이다. 소실된 부분이 많지만 방형 과판에 심엽형 수식으로 추정되고 과판과 수식에 모두 촘촘히 원문을 타출했다. 또한 축조(蹴彫)기법으로 가장자리와
내부에 구획선을 표현해서, 방형 과판은 X자형, 수식
은 I자형이다.
대장식구 B는 하나 과판 내부 X자 표현과 심엽형 수식이라는 점에서 5세기 전중기의 황남동 110호분 출토 대장식구와 비슷하고.심엽형 수식은 합천 옥전 M1고분군 출토품과 비슷하다. 합천의 장신구는 주로 아라가야와 대가야계가 많기에 초기 아라가야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뭐가되었든, 앞으로 비슷한 유형의 유물이 출토되기를 기다려야 할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도항리 54호분 출토품은 귀면문의 금동제인데 학계에선 귀면장식으로 분류했다.
성시구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는데 허리띠에 달린 대장식구나 수식으로 볼 수도 있다.이런 귀면장식은 고령과 김해에도 비슷하게 출토되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할것 같다.
3) 귀걸이
귀걸이와 목걸이는 남녀의 구분없이 이용된 장신구이다.
아라가야권인 함안 내지 뿐만 아니라 범 아라가야계인 의령,합천에도 다수 출토되었다.

함안 내의 고분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37점으로 모두 금속제이며 귀걸이의 소재는 금 혹은 청동에 금박을 한 것이 대부분인데, 남문외 11호묘에서는 철봉을 원형으로 만든 후 은판을 감싸 만든 귀걸이도 출토되었다.

귀걸이의 형태는 가는 봉(棒)을 말아 만든 단순 고리형이 31점이고, 나머지 6점은 수하부를 매달아 장식했다. 모두 장식적인 수하부를 보이며 그중 1,2번 귀걸이의 경우 제작기법 면에서 '아라가야'스러운 귀걸이로 평가받고 있다. 특이하게 3번 귀걸이는 부식이 심하지만 금제 세환 아래 은제 고리와 수하식이 연결된 것으로 2가지의 금속 소재를 모두 사용한 특징을 보인다.
또한 하단 흑백 그림과 같은 금속제 주고리에 수하부로 구슬을 부가하는 경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보편적이고 널리 쓰인 귀고리(이식)으로 추가로 귀걸이를 연결하고 고정하는 식이다. 도항리 48호묘(하단-좌)에서는 금제 세환에 비취 곡옥이 각각 1점씩 짝을 이뤄 출토되었고, 도항리 8호묘(하단-우)도 금환과 곡옥이 함께 출토되어서 금환 아래 곡옥이 매달린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암각화고분에서는 금환과 같은 장소에서 청색 유리제 구슬이 2점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금환과 함께 장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도항리 8호묘에서는 순장 2명, 암각화 고분에서는 순장 1명이 금제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어 귀걸이는 지배층 내에서 일반적으로 소유했던 장신구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의령군에는 아라가야계로 보이는 수많은 금제 귀고리들이 출토되었고 합천 옥전고분군에서는 뛰어난 세공술의 아름다운 귀걸이들이 출토되었다.
출토품은 금, 은, 금동으로 다양하며 형태에 따라 민고리귀걸이,금동세환고리 등으로 분류된다.
전체적인 특징은 세환식으로 관통되어 있다는 것과 중간장식,드림장식이 있다는 점으로 이는 가야양식과 비슷하다. 중간장식은 속이 빈 알 모양이고 드림장식은 풀, 꽃봉오리, 방울 모양 등이 많으며 매우 세밀하고 정교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가야-아라가야의 영향을 받은만큼 언급할 가치는 충분하다.
4) 목걸이
목걸이 또한 고대부터 이어져온 유서깊은 장신구인 만큼 상당수가 출토되었다. 이미 '삼국지 동이전 삼한조'에 금은과 구슬을 보배로 여겨 목에 매달며 장식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삼한에서부터 사용되었으며 아라가야에서도 상당히 선호한 듯 보인다. 이전의 장신구와는 특이하게 다른 점이라면 금속보다는 구슬과 같은 옥이 주 재료로 많이 사용된 점이다.
목걸이에 사용된 구슬은 형태에 따라 환옥, 곡옥, 관옥, 다면옥, 산반옥 등으로 나뉜다.
목걸이의 유형또한 나눌 수 있는데 목걸이에는 대부분 환옥이 있기에 환옥만 있으면 1유형, 환옥+옥 1종은 2유형, 환옥+2종은 3유형, 환옥+옥 3종이면 4유형으로 분류하고, 이외에 환옥이 아닌 다른 옥이 주로 이루어진 경우는 기타 유형으로 분류된다. 물론 학계에서 정한건 아니지만 아라가야의 장신구 연구 논문의 분류를 따르기로 한다.

함안에선 총 42점의 목걸이가 출토되었으며 이밖에 진주,의령에서도 출토되었다. 소재는 유리가 대부분이고 호박,비취,경옥,벽옥,수정,마노,천하석 등이 있다.
위 분류에 의하면 함안의 총 42점의 목걸이는 기타 유형 1점, 1유형 16점, 2유형 21점, 3유형 4점으로 나뉘는데, 1, 2유형이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차례로 구성을 보자면 기타 유형 1점은 도항리 31호묘 출토 목걸이로 총 9개의 다면옥이 사용되었고 수정 다면옥 7개, 호박 다면옥 2개로 구성되어 있다.
1유형은 단일 환옥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순하며 16점 거의 형태가 동일하다. 반면, 환옥+1종의 옥으로 이루어진 2유형은 다르다. 환옥과 결합한 다른 옥의 구성이 곡옥 16점, 다면옥이 5점으로 곡옥의 사용이 압도적이다.
3유형 4점의 경우, 말이산 HM木1호묘 출토 목걸이는 가운데 곡옥 옆에 다면옥이 있지만 환옥과 색상이나 크기가 유사해서 거의 분간이 안가고, 다른 2점도 환옥에 곡옥이 장식된 형태에 관옥이 한두개 추가된 정도라 2유형과 비슷해 보인다. 또 남문외 11호묘 출토 목걸이는 환옥과 2개의 다면옥, 1개의 관옥으로 이뤄졌는데, 총 33개의 적은 수량의 구슬로 제작됨으로써 다소 소박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옥의 종류가 많을수록 화려한 경향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특이하다.
이밖에도 이러한 유형분류에서 제외된 진주,의령지역 목걸이도 상당수 있기에 종류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라가야의 목걸이에서는 옥의 다양함에 따른 화려함보다는 같은 형태더라도 소재와 색상을 다르게 해서 더욱 화려함을 나타냈다.

5) 팔찌
팔찌도 귀걸이 못지않게 사용된 장신구이며 접근이 더 쉽고 전연령에서 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는 많았을 것이다.그러나 아라가야의 팔찌는 출토 사례가 적어 부족한것을 보아 그당시 수요가 적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래도 함안에선 4점이 출토되었는데, 말이산 HM본2호분의 구슬제와 21호분의 금제, 남문외 11호분의 청동제와 말이산 14호분의 은제가 있다.
목걸이와는 다르게 소재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청동제에는 각목문이 확인되며 당시에 자주 쓰이던 양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리해보자면, 아라가야의 지배층은 끈이 있는 대관을 썼으며 일반인은 천, 귀족은 대체로 가죽재질에 화려한 금속 대장식구-버클-수식이 달린 허리띠를 착용하고 금제 귀걸이와 다양한 팔찌, 목걸이로 장식했다. 목걸이, 팔찌는 구슬과 재질의 차이만 있을뿐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신구는 의복의 형태를 완전히 보여줄수 없다.
2. 수착 직물
1) 아라가야계 직물
아라가야의 복식을 추정하는 단서로는 직물이 있다. 물론 제대로된 의복이 아닌 압착된 흔적, 수착직물이다
아라가야의 수착직물은 도항리 고분군에 압착된 직물들이 거의 유일하다.
도항리 36호분에서는 유자이기에 수착된 직물이 있다.
184도면에 성근 평직의 직물이 흔적이 있는데, 밀도와 실의 굵기 등은 측정할수 없지만 185 도면에 동일한 평직의 직물이 몇 겹으로 수착되어 있었다.
위사(가로축 실)는 알수 없고 경사(세로축 실)의 굵기는 0.15/mm이며 밀도도 91.8/cm로 치밀한 직물이다.


44호분의 철제집게(그림 2)의 직물은 실의 직경이 0.367x0.396/mm이며 밀도는 38.4x122/cm이다. 실의 직경에 비해 비교적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으며 경위사의 밀도비는 3.27로 큰 편이고 평직이다.
37호분에는 악판(鍔板)의 이면(그림 3,4)에 직물이 수착되어 있다.
삼국시대의 과대는 보통 포대(헝겊띠)나 혁대(가죽띠)에 악(칼날장식?)•현구(걸쇠)•대단금구(띠의 끝 장식) 등을 못으로 고정시키고, 그 아래에 각종 의미와 용도의 패물을 늘어뜨린 구조이지만 이 과대는 늘어뜨린 패물들이 없는 형태의 과대이다.
282도면에는 동일한 직물이 몇 겹으로 수착되어 있는데, 최소한 7겹 이상으로 보이며 방울판의 원두진(둥근머리장식) 높이만큼까지 직물로 채워져 있다. 이로써 이 과대는 제작시에 직물을 7겹 이상 두껍게 하여 띠가 과판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한 후에 과판을 리벳으로 고정시켰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관찰 결과에 따르면,그림 6과 같이 섬유의 중간에 마디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麻)로 확인되었다.
도면번호 287의 이면에는 리벳부분에 직물이 아주 조금 붙어 있는데, 나머지는 유물 처리과정에서 잘려 없어진 것 같으며 조사할 당시에는 직경 0.42 mm 정도의 실 몇 가닥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5호분의 성시구(그림 7)의 직물은 평직이며 밀도는 경 • 위사 21.1x16.3/cm이고 실에는 S꼬임이 있으며 직경은 0.441 x0.373/mm이다.
38호분에는 2개의 대금구 사이에 직물이 3겹으로 껴 있는 형태(그림8,9)로 발견되있다. 삼국시대에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과대의 한 쪽 끝부분에는, 판금구를 2장으로 겹쳐서 벌어진 쪽에 띠를 끼워 못으로 고정시킨 대단금구가 있는데, 27도면은 이것으로 보인다.
이 직물의 밀도는 16.1 x 18.1/cm고, 경 • 위사에 S꼬임이 있다. 실의 직경은 차이가 많이 나는데, 특히 경사는 0.31- 0.54/mm까지의 차이가 나며 평균 굵기는 0.422 x 0.424/mm이다.
관찰 결과, 37호분의 282도면과 같이 섬유에 마디가 보이고 단면은 다각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마로 확인되었다.
39호분의 화살통에는 두 종류의 직물이 수착되어 있는데, 한 직물은 꼬임이 없고 직경이 0.864x0.882/mm의 아주 굵은 실로 직조한 성근 직물이지만 다른 직물은 치밀한 직물의 흔적만을 파악할 수 있었다.
54호분에서는 3점의 직물이 보인다. 초미금구(칼끝장식)엔 치밀하게 엮은 두 직물이 있지만 식별이 어려우며 4호분 말띠드리개의 직물은 경사가 위사에 비해 가느다란 실로 만든 평직이다.
8호분의 직물 3개는 식별이 불가하며 같은 고분의 성시구와 동일한 직물로 보이고 평직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아라가야의 직물들은 일반적으로 마를 통한 의복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마(삼베)인지 저마(모시)인지 자세히 알수는 없으나 39호분 출토 직물을 제외하고선 대부분 0.3~0.4의 굵기를 지닌것을 보아 모시가 아닐지 추측한다. 대마일 경우 대체로 모시보다 직경이 굵고 대가야 대마직물의 경우, 굵기 0.7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얇은 모시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다만 39호분은 0.8정도로 굵기 때문에 대마직물 같다.
밀도는 치밀하고 높은 편이며 대마,모시를 가리지 않고 비슷하다. 대가야 또한 밀도가 다양해서 직물과의 큰 연관은 없는것으로 보인다.
또한 직조방식은 대체로 평직이며 일부 능직과 변화직도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2)대가야계 직물
아라가야의 직물자료는 부족하며 견직물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동시대 가장 교류가 많았고 비슷할것으로 추정되는 대가야의 직물을 통해 조금 더 실마리를 알아보기로 한다.
대가야에는 다양한 직물이 발견되었다.

대마, 모시를 포함한 마직물과 견사와 세초를 포함한 견직물이 주를 이뤘으며 제직기법도 다양했다.
대가야의 마직물은 경위사 밀도비가 균일했으며 S꼬임이였고 대마에는 평직, 저마에는 평직과 엮음직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마에는 염색이 사용되었는데 염색으로 문양을 표현한 직물로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생초M13호분 직물은 염색으로 문양을 새긴 오래된 직물로 크게 두가지 방법 중 하나로 그려졌을것으로 추측되는데 하나는 홀치기 기법을 통한 침염 방법이고 나머지는 납염 방식이다. 이밖에도 힐염, 회염 등 다른 방식도 추측되지만 모두 문양을 표현하기엔 충분하다. 어느 방식이든 사용되었을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생초 9호분의 경우 저마에 선염이 사용된것이 확인되는데, 보통 직조후에 염색을 하는 후염 방식이 사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대가야에선 선염과 후염 방식이 둘다 사용된 중요한 증거가 된다.
견직물은 명주실로 짜여진 견(絹), 즉 비단이다. 이중 견사(絹絲)외에도 삼국사기에서는 얇은 비단을 세초(細綃)라 부르는데, 본 견직물 중에선 매우 밀도가 높고 얇은 견직물이 확인된다. 따라서 직물로는 견과 초가 사용되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직조방식은 표에 따라 평직, 능직, 익직 등이 확인되며 익직으로 짜여진 비단은 라직물이라고도 불린다.
옥전 고분군에도 발견된 수착직물이 있으나 대체로 대가야에 속한 5세기 이후의 연대이고 투구와 같은 각종 무구에 부착되어 있어 그 지역 또는 대가야권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대부분은 평직의 마직물이고 일부는 3매능직, 변화직이다.
이처럼 대가야에서는 마직물, 견직물을 비롯해 다양한 직조 방식과 염색법이 활용되었다. 문화적 교류가 있던 아라가야라고 없을것이라 볼수는 없다. 나중에 2편에서 다룰테지만, 삼한시대부터 충분히 직조기술과 양잠이 보편화 되어있었고 마직물과 견직물의 종류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3. 방직구류
방직구란 실을 뽑는 방적, 천을 짜는 직조에 필요한 모든 기구를 통칭하는 단어로 방직구류에는 방추차, 바디, 물레, 베틀, 얼레, 직기류 등이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출토된 것으론 강릉 강문동에서 출토된 목제방추차, 광주 신창동, 부여 궁남지, 함안 성산산성 등에서 출토된 얼레, 부여 궁남지, 오산 가수동에서 출토된 비경이 등이 있다.

그중 광주 신창동에서는 배를 잘 때 위쪽에서 밑으로 당기는 도구인 위타구가 출토되었는데. 천의 재료인 원사를 꼬아 만드는 방추차와 실감개, 그리고 실물 자료인 천조각도 함께 출토되어 고대 사회에 직접 천을 생산했음을 알려준다. 삼한시기로 추정되며 신석기 시절부터 방추차를 이용해 실을 짰다. 이는 아라가야도 예외가 아니였을 것이다.

현재 아라가야의 방직구는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로 확인할수 있다.
1)얼레
우선 얼레의 일부가 출토되었는데, 수종 분석 결과 함안 성산산성 출토품은 소나무로 확인되었으며 함안 성산산성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경, 이제 막 신라에 병합된 뒤 작성된 신라 목간이 같이 출토되었기에 삼국시대는 확실하나 신라의 유물일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 생산된 물품을 사용하는게 더 가능성 있기에 아라가야에서 생산된것으로 보인다.

2)방추차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것은 얼레 뿐만이 아니다.
방추차 9점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가락바퀴로 불리며 원시적인 방직구류이다. 삼국시대로 연대가 잡히는것을 보면 아마 당대에도 꾸준히 이용되었던것으로 보인다.


3) 타타리(쩐지)
이건 순전히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함안성산산성에 출토된 목기들 중 상당수는 용도불명의 목기이며 이형목기로 분류된다. 그중 v자형 목기나 봉형목기를 살피던 도중 순간 다른 용도의 목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타타리이다.
일본 논문,「일한 고대 직조도구에 대한 고찰」과 「목제품 집성 도록 긴키 원시편」에서 타타리(쩐지)라는 직조도구를 언급하고 있다.
「목제품 집성 도록 긴키 원시편」에 따르면, 타타리의 기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연하게 만든 마의 섬유 묶음을 거는 대(막대기)의 역할, 거기에서 섬유를 가늘게 나누어 쪼개고 연결하여 꼬기 이전의 실을 물레질하는 방직 도구이다. 또 하나는 실을 뽑아 타래에 감은 실뭉치를 일시적으로 결어두는 타래걸이로 쓰인다.
타타리는 크게 두 가지 유형(A형, B형)이 있다. A형은 v자형 막대를 세우고 섬유를 일시적으로 걸어두기 위한 유형이고, B형은 봉에 실을 감고 실타래로 걸어두는 용도이다.
A형 유물로는 일본의 오키노시마 22호분 청동 타타리, 치바현 스고우 유적과 톳토리현 사이노타니 유적의 목제 타타리가 있고 한국에선 광주 신창동, 경산 임당동 습지 유적에서 발견된 목제품이 유사하다. 또한 현대 한국 민속인 한산 모시 제조에서도 비슷한 도구가 사용된다.



참고로 일본만의 물건이 아니며 고대 왜인들이 모시를 방적했다는것을 생각하면 이미 중국에서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것으로 보인다. 타타리의 기원은 중국으로 추정되며, 삼 뿐만 아니라 명주, 목화에도 활용될 수 있다.
논문에서도 간단한 형태로 인해 출토되고도 간과되어 불명품인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 직조 기술의 핵심 도구이다. 과연 함안 성산산성에는 있을까?
목기류를 살펴보면 몇가지 의심스러운 목기를 발견할수 있다.


V자형 홈이 파인 막대기형 목기가 대략 6점 가량 보인다. 집게형 목기도 비슷할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V자형 목기는 9점이나 출토되었지만 확인할수 있는것은 그중 한점이다. 사진 자료를 보면 감이 올것이다.



이러한 목기들이 타타리가 아닐까 싶다.
집게형 목기와 봉형목기들은 A형에 가깝고 V자형은 특히 연문축 B형에 가깝게 생겼지 않았는가?
이미 얼레와 같은 방직구 부속구가 발견되었고 고대부터 마직물, 견직물을 생산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형태가 너무 간단해서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드니 간과되지 않았을까 싶다.
따라서 일명 타타리라 불리는 고대 직조기구가 아라가야에도 존재했음을 알수 있다.
4.염색 염료
앞서 다룬 대가야의 직물에 관한 내용중에 다채로운 염색기법이 대가야에 존재했음을 볼수 있다. 추측컨데 아라가야도 이와 비슷한 염색기술을 지니고 있을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전편에도 다뤘듯 옻칠공예가 발달해서 장식용 목기 등에도 활용되지만 염색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는 없을까?
말이산 13호분에는 무덤 내부를 붉은색 안료로 칠한 주칠(朱漆)의 흔적이 확인된다. 말이산 13호분은 무덤 벽석을 쌓고 점토로 마감한 후 붉은색 안료를 칠한 채색 고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혈식석곽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가야의 수혈식 석곽에서 보이는 주칠은 말이산 13호 사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칠 흔적을 보아 붉은색 안료가 존재했다는것이 입증되니 아라가야에서도 옷에 붉은색을 가미했을 가능성도 크다.
나머지 내용은 2편으로 나눌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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